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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에게 장미를

서사희 『세실에게 장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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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3/05/05
서사희
출판 레토북스
분류 로맨스판타지 〉 서양풍 로판

줄거리

스카스가드의 예술품
라플란드 육군 출신 명장
민간에서 가장 사랑받는 왕자
그리고 톨레도 최고의 카사노바 비센테 스카스가드.

그가 진정으로 마음에 둔 숙녀를 모두가 궁금해했다.

왕자는 누구를 사랑했을까?

* 본 작품의 제목과 일부 장면은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을 오마주하였습니다.


이게 진짜 사랑이지….

난 이제 이 정도가 아니면 사랑도 아닌 것 같아
아무래도 로맨스를 잘못 배운 것 같죠?

『세실에게 장미를』은 진짜 내 인생소설이다
죽을 때까지 한 소설만 계속 읽을 수 있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이거 고름
얼마나 좋아하냐면 내가 이거 선물한 사람만 20명이 넘어감
그치만 정말 내가 좋아하는 망사랑의 대표작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걸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이 왜 좋냐고 묻는다면…
뮤지컬 〈파과〉 리뷰에서 썼던 문단을 또 가져오는 수밖에

창작물 상에서
어릴 적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의 여성에게서
큰 정신적 트라우마를 입은 남성 캐릭터들은
가끔 그 트라우마의 해소 방향이 ‘그 여자를 미친 듯이 사랑하게 됨’ 쪽으로 발현되곤 합니다

어릴적 자신을 납치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연하의 남자
사랑이란 악녀를 불쌍하다 여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남자
와…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
얘는 이미 정신병원 다니고 있어서 정신병원 가라고도 못 하겠고

극도로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소설

개인적으로 엔딩이 굉장히 충격적이고 마음에 듦
진짜로 살면서 읽어 본 로판 엔딩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좋음….
이런 엔딩이기에 더 아름다운 작품이고
망사랑 좀 좋아한다 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함

아무튼 이거 발췌를 150개를 넘게 해뒀는데
그 중에서 인상 깊은 것들만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망사랑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스포일러

톨레도 최고의 카사노바에게 진실한 사랑을 묻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1. l’amour

작중에는 ‘진실의 브랜디 게임’이라는 게임이 나오고, 비센테는 늘 ‘모든 여인들을 사랑한다’ 등의 말로 카사노바인 ‘척’을 하지만
사실 그가 정말로 사랑하는 건 절대로 사랑해서는 안 될 단 한 명의 여자라는 게….

2년 전, 술에 취한 그의 외투에서 나온 편지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연서였는데, 그 내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애틋하고 절절했다. 몇 구절은 인용되어 음유 시인들 사이에서 유행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 편지에 적힌 날짜는 한창 전쟁 중이던 시기였다. 비센테는 당시 일반 군인으로 입대해 전선에 나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 전쟁 통에서도 잊지 못한 여자라는 이야기였다. 그로 모자라 전하지 못한 연서를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지니고 있기까지 했다.

1. l’amour

얼마나 로맨틱한가
전하지 못한 연서라니!! 너무 자극적인 소재

비센테는 세실과 자주 마주치는 만큼 그녀에게서 악담도 수십 수백 배로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오히려 가족이자 친우였던 안토닌의 어머니라며 세실을 극진하게 대했다. 실제로 과거 섭정 공의 아들이었던 비센테는 왕자인 안토닌과 놀이 친구였기도 했다.

1. l’amour

제가 장담하는데 창작물 속 인물들 중에서 어머니뻘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들 중 정신 똑바로 박힌 놈은 없습니다
비센테와 투우(뮤지컬 〈파과〉 등장인물)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죠

창백한 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도드라졌다. 비센테는 문득 그 핏줄에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 l’amour

그녀가 마음먹고 거짓으로 그를 꾀어낸다 한들, 비센테는 도무지 당해 낼 재간이 없을 터였다. 다 알면서도 기꺼이 속아 주기나 하겠지. 그녀의 다정한 말 한마디를 들을 수만 있다면 그는 금이 가득 든 궤짝을 갖다 바칠 수도 있었다.

1. l’amour

“오래전부터 마음에 둔 여자가 있어요.”

세실의 걸음이 멈칫했다.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나한텐 그 여자 하나뿐이야.”

1. l’amour

톨레도에서 비센테는 그런 이미지였다. 그가 아무리 그녀를 찾아오고 말 한마디 걸어 보려 애써도 오해받지 않는 이유였다. 애초부터 그런 의도로 온갖 염문을 뿌려 댄 것이기는 했다. 비센테는 적이 많았고, 세실은 그의 가장 큰 약점이었으므로.

1. l’amour

‘그러니까…… 제가 물어보고 싶은 것은― 공께서 진정으로 마음에 둔 숙녀분은 누구일까, 하는 거예요.’

“세실.”

비센테는 나직이 대답했다.

“세실 르루아.”

1. l’amour

세실 르루아는 여자치고 상당한 장신에 언제나 냉담한 모습이었다. 여리고 상냥한 비센테의 모친이나 누이와는 전혀 다른 여자. 말 한마디 한마디 얼음이 뚝뚝 떨어져 피마저 푸를 듯하고 눈물이나 미소도 없어 보이는 여자.

2. l’amour

저는 사실 창작물 속의, 세실 같은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창백하고 까만 까마귀 같은 여자를 매우 좋아합니다

‘안녕하세요, 공자.’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과 창백한 피부는 동화책에서나 보던 눈의 나라 공주님 같기도 했다. 한순간 넋을 놓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나, 아무런 표정이 없어서 마치 고장 난 관절 인형처럼 보였다.
비센테는 순간적으로 세실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시 열 살이던 그에게는 온갖 망가지고 버려진 것들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세실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며, 딱히 망가지지도 버려지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2. l’amour

싹수가 노랗다 진짜

오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인지, 비센테는 왕자의 친구라는 명목으로 괜히 궁 안을 얼쩡거리며 세실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녀에게 건넬 오늘 날씨에 관한 인사말을 입 안으로 계속 되뇌면서.
막상 마주치면 하얗게 굳거나 도망쳐 버리고 말았지만…….

2. l’amour

세실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창백한 입술은 경련하듯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평소의 냉엄함은 온데간데없이 연약하게 흐려진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어뜨릴 듯했다.

하나하나 각인하듯 새긴 후에야 비센테는 다시 그녀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세실은 열넷에 불과한 그보다도 눈높이가 낮고 덩치가 작았다. 지금껏 그저 멀리서만 바라본 탓에 몰랐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세실이 사람 같지 않은 여자라며 수군거리곤 했다. 비센테 역시 그렇게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소년은 이 순간 의문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없었다. 저토록 인간적인 여자였다. 저토록 애처로운 여자였다.

비센테는 세실이 어째서 자신을 살려 준 것인지 알지 못했다. 어째서 이렇게나 무너진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고 또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를 이곳에 가둬 놓은 장본인인 그녀를 끌어안아 위로해 주고 싶어질 정도로.

2. l’amour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은, 그녀의 고독을 알기 위해 이 독방에서 고독했던 것이 아닐까.
그녀의 망가짐을 알기 위해 이 독방에서 망가져 버린 것이 아닐까.

2. l’amour

있잖아.
당신은 내게 그런 모습을 보여 주지 말았어야 했어.
그 독방에서 나는 반쯤 미쳐 있었지. 증오해 마땅한 당신을 그토록 그리워하며 찾았던 것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야.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대로 나를 돌려보내 주었다면― 나는 몸과 마음을 천천히 회복해 나갈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당신이 나를 그럴 수 없게 만들어 놓았어. 당신의 무너짐을, 외로움을, 아픔을, 그리고 나를 향한 일말의 동정심을 목도한 순간부터…… 나는 완전히 미쳐 버린 것 같아.
세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억압자.
내 삶을 가로채 말뚝에 매어 버린 침략자.
당신을 원망해.
내 마음 따위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아는데도.

2. l’amour

세실이 비센테의 앞에서 무너진 모습을 보인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만,
이후로 비센테는 평생을 세실의 이 모습에 매달려 살아가게 된다

자신을 납치해 죽이려고 했던 여자가 무너져 울었다는 이유 하나로 그 여자를 평생 사랑하게 되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병자 같은 행위가 다 있을까?

이 파트를 읽을 때마다 서사희 작가님의 필력이 정말 끝내준다는 걸 체감한다.
정말… 이렇게 직관적이면서도 절절하고 아름다운 문장은 어떻게 해야 쓸 수 있는 것인지

정확히 세실이 했던 말은 ‘전쟁에나 나가서 벌레처럼 뒈져라’였다. 비센테는 알았다고 대답했고 곧장 군에 입대했다. 정말 죽는대도 상관없었다. 그렇게라도 그녀에게 기억되고 싶었다.

2. l’amour

여자가 나가 죽으라고 했다고 진짜 죽으러 가다니….
상종하면 안 될 미친새끼임(positive)임이 틀림없다

반쯤은 세실을 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비센테라고 좋아서 그녀를 갈망하는 게 아니었다. 도리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원해 봤자 얻을 수도 없는 여자인데. 나를 사랑하지도 않을 여자인데. 나는 영영 이렇게 아프기만 할 텐데…….

2. l’amour

“그 여자가 누군지 캐물을 게 싫어서 비밀로 했던 건데. 누군지는 안 물어보나?”
“됐습니다. 그 유명한 연서 상대잖아요. 어차피 지금은 또 질리셨을 거고. 뭐. 전하께서 여자 좋아하시는 건 알았지만, 목숨까지 내다 버릴 정도인 줄은…….”

‘왕이 되고자 마음먹은 것도 여자 때문이라고 하면 뒷목 잡겠군.’
비센테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2. l’amour

왕이 되고 나면 정말로 세실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페트부르크의 왕이 게르하르트의 폐왕비와 결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녀를 가질 일은 앞으로도 요원했으니까.

2. l’amour

이게 망가진 남자의 순정이야
이게 비센테의 순정이야

비센테의 기억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9년 전 울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박제되어 있었다. 비센테에게 세실은 언제나 스물일곱의 세실이었다. 그 후로는 늘 짙은 베일을 쓰고 다녔기에 이목구비의 어렴풋한 윤곽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2. l’amour

9년 동안 한 여자를, 어머니뻘의 여자를, 그것도 자길 납치해 거대한 트라우마까지 심어준 그 여자를
그 여자가 무너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진짜 어마어마한 미친놈이고 현실에 존재한다면 절대 상종하고 싶지 않다

왜 하필 그녀일까.
왜 하필 그녀인 걸까.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말았을까.

2. l’amour

‘세실을 살려 주세요.’
‘안 된다.’
‘제발 그녀를 살려 주세요.’
‘안 된다.’
‘아버지는 저를 버리려고 하셨잖아요. 제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신 거잖아요. 그런데 그녀는 나를 살려 주었어요. 나를 죽일 수도 있는데 살려 줬다고요.’

부친을 포함한 주변인들은 비센테가 세실을 살리고자 했던 것이 독방에서 얻은 정신 질환의 일종이라고 여겼다. 세뇌라도 당한 게 아니고서야, 자신을 감금한 여자의 편을 들 리가 없으므로. 사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비센테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2. l’amour

다음 날 저녁, 다시 찾은 거울궁의 입구에는 짓밟힌 수국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소담하게 모여 있던 꽃들은 이리저리 꺾였고, 생생하던 잎은 너덜너덜하게 뭉개진 채였다. 비센테는 길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애써 미소 지어 보았지만 끝이 자꾸만 일그러졌다.
거절당하는 것에는 익숙했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그녀는 그를 증오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독방에서 느꼈던 기묘한 연대감 따위, 당치도 않은 친근감 따위, 다 착각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2. l’amour

그는 자꾸만 흐트러지려는 호흡을 조절하느라 부단히 애를 써야 했다. 그토록 갈망하던 여자가 눈앞에 무방비한 모습으로 수마에 빠져 있었다.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비센테는 저도 모르게 베일에 손을 뻗었다. 다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한 번만.
한 번만 제대로 보고 싶었다.
십 년 가까이 머릿속으로만 끊임없이 그리고 또 그려 보던 얼굴을, 단 한 번이라도 다시.
또 가능하다면 그 이마에, 뺨에, 입술에…… 단 한 번이라도 닿아 보기를…….
금방이라도 검은 베일을 스칠 듯한 손끝이 덜덜 떨렸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해도, 그녀의 살갗 감촉을 자꾸만 상상하게 되었다. 숭배의 감정과 본능적인 성욕이 뒤섞여 발아래 웅덩이처럼 고였다.

2. l’amour

사랑하는 여자의 손조차 잡아볼 수 없는 사이라는 게 더욱 비센테가 세실에게 갖는 맹목적인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느낌
원래 갖지 못하는 것일수록 더 갈망하게 되는 것처럼….

망설이던 비센테는 으스러진 꽃다발 사이를 헤집어 멀쩡한 수국 한 송이를 뽑아냈다. 그리고 그것을 책 옆에 두었다. 못내 미련이 남은 시선으로 그녀를 살폈지만, 베일 아래 가려진 얼굴에서는 감정의 편린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2. l’amour

이 파트 진짜 어마어마하게 좋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실에게 장미를』에서 좋아하는 장면 한 손 안에 꼽을 수 있는 장면

사랑하는 여자가 자신이 준 꽃을 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 안에서 멀쩡한 꽃을 골라내 다시 선물하는 그 마음
비센테의 마음이 너무 깊어서 읽는 내가 다 힘들다….

세실, 당신도 꿈을 꿔?
당신은 어떤 꿈을 꿔? 그 안에서 무엇을 보지? 죽은 남편? 아들? 친정 가족들? 명예로웠던 나날들? 그도 아니면 일어나지 않은 환상?
나는 당신 꿈을 자주 꿔.
꿈속에서 난 당신의 차가운 얼굴을 멀찍이서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후작저의 독방에서 당신을 애타게 부르기도 하고, 반항하는 몸을 억지로 붙들어다 키스해 버리기도 해.
꿈에서 깨어나면 달아오른 몸을 어쩌지 못해 팔 굽혀 펴기를 수십 번 하고서야 정신을 차리지. 그로도 안 되면 찬물을 끼얹거나. 이 사실을 안다면 당신은 날 경멸하겠지만 말이야.
이게 다 무슨 말이냐면, 세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당신 꿈에도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해도 좋으니까.
조금쯤은 당신의 무언가를 내가 차지해 보고 싶어.

2. l’amour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나 ‘당신의 옆에 있고 싶다’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저 ‘아주 작은 부분이어도, 스쳐 지나가는 부분이어도 좋으니 당신에게 무엇으로든 남고 싶다’라는 이 고백이….

그건 마치 새로 산 옷을 자랑하고 싶어서, 괜히 챙겨 입고 쏘다니는 애새끼 같지 않은가. 세실의 눈에는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었다.

3. l’amour

“내가 당신 아들의 자리를 빼앗아서 싫은 거라면, 왕자 직위 따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한 적 있잖아요. 당신만 나랑 함께 떠나 준다면…….”

3. l’amour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를 사랑했다. 진심이었다. 이게 사랑이 아닐 리 없었다. 죽음조차 상관없어져 버리는 감정이, 사랑이 아닐 리가 없는데.

3. l’amour

“……나랑, 지금이라도 당장.”
“…….”
“나랑 도망가요.”

비센테가 처음으로 이런 말을 했던 것은 4년 전이었다. 스무 살의 그는 지금보다 더한 혈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차마 마음을 고백할 용기는 없으면서 그녀의 주변을 계속 맴돌기만 했고, 돌아오는 저주를 삼켜 냈다.

… 그리고 고함치듯 말을 쏟아 냈었다.
당신 아들 자리였던 거 알고, 내가 싫은 당신 마음도 안다고. 하지만 자신도 어린 소년이었고 피해자였을 뿐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직위를 내려놓고 왕궁 밖으로 나가겠다고. 대신 당신도 같이 가자고. 영지도 있고 작위도 있으니까, 모든 걸 잊고 알바세테로 함께 가자고…….
그러나 세실은 그런 그를 비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이.
이후 비센테는 전쟁에 참전했다. 수없이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머리가 깨진 채 연인의 이름을 부르는 동료를 보며 그녀를 생각했다. 전우의 시체에서 발견한 아내의 사진을 보며 그녀를 생각했다.
참호가 무너져 꼼짝없이 갇혔을 때 그녀를 생각했다. 사람의 시체를 먹고 큰 거대한 쥐와 동고동락하며 그녀를 생각했다. 복부에 총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면서도 그녀를 생각했다. 생각했다. 생각했다. 생각했다.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영영 그 여자를 잊을 수가 없겠구나.

3. l’amour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악몽이자 망령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요

잠깐의 간격 후, 굳어 있던 비센테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그의 목에서는 삐걱삐걱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채 정면을 보기도 전, 세실이 다시 그의 뺨을 후려쳤다. 여기저기서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제가…… 실언했습니다.”
“전하……?”
“제가 잘못한 겁니다. 죄송합니다, 부인. 크나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용서하십시오.”

3. l’amour

언제나, 말하고 싶었다.
모두에게 외치고 싶었다.
진심으로 마음에 둔 여자가 있다고.
당신들이 그토록 조롱하고 경멸하는 여자가, 내겐 보석보다 아름답고 목숨보다 귀하다고.

3. l’amour

어린 비센테는 이따금 몰래 뒤쫓아가, 매를 날리는 왕비를 멀찍이서 훔쳐보곤 했다. 차마 가까이 다가서진 못하고 근처만 빙글빙글 맴돌았다. 우연인 양 그녀와 마주치길 바라며.
어린 소년일 적부터.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3. l’amour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죄했다.

“제가 큰 잘못을 했습니다. 제게 욕하고 손을 대셔도 달게 받겠습니다. 당신께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습니다, 제가. 제가…….”

어쩌면 그녀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 스스로가 너무도 혐오스러워져서…….

“감히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비센테는 고개를 숙인 채 힘겹게 내뱉었다.

3. l’amour

“감히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했나?”
“…….”
“그렇다면 뛰어내려라, 비센테 스카스가드.”

“나는 시체에 익숙해요, 부인.”

너무도 아름답고, 또 너무도 두려워서.

“죽이는 건 내 전문이죠. 그게 나라고 할지라도.”

바보, 병신, 얼간이, 천치! 이대로 죽어도 어차피 사랑받지 못할 텐데, 용서 하나로 목숨을 내다 버리는 어리석은 작태라니.
이걸로 그녀의 마음이 좀 더 편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래?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다면.
정말로 그래?
사랑받지 못할 거라면 동정이라도 받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정말로 그래?
평생 아픈 것보단 죽음이 더 나을지도 모르고. 이 또한 보스부르크에서 수없이 했던 생각이야.
너는 그 독방에서 단단히 망가진 게 틀림없어.

서서히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려는 찰나,
멱살이 잡혀 옆으로 휙 당겨졌다.

4. l’amour

아름다움의 극치가 나타나는 장면….
사랑하다 미쳐버린 이들의 특징: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를 넘어서, 그 사람에게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람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사랑하는 여자가 지금 당장 자살하라고 했다고 진짜 자살하려는 놈이 어디에 있는가?
비센테가 그걸 해냄

방법은 늘 같다. 그녀를 바라보고, 갈구하고, 매달리고, 죽음마저 불사하고, 매일 아침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실감하고, 그 삶의 끄트머리에서 다시 원하고 또 원하고.
이걸 사람으로 채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알았다.
이 사랑이 정상적인 형태는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다만 그래도 상관없을 뿐이었다.

4. l’amour

왜?
왜 저자에겐 그렇게 달래듯 다정하게 말해요?
왜 저자를 안심시켜 줘요?
저 새끼가 뭔데?
또 나는 뭔데?

4. l’amour

비센테는 성큼 걸어가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그러나 손아귀에 잡힌 뼈대가 너무 가늘어, 본능적으로 손에서 힘이 빠졌다. 목 저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비센테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내가 다 버리겠다고 하잖아, 그런데 왜!”
“너. 미쳤어?”
“예! 미쳤어요!”

“내가 제정신으로 보입니까? 자길 독방에 가둬 놓았던 여자에게 십 년이나 절절매는 게, 좋아하는 여자 잊겠다고 사지에서 그 개고생을 하는 게 정말 제정신 같아요?”
“십 년간, 네 의지였어.”
“의지? 의지라고요? 아뇨, 단 한 번도 내 의지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당신을 바라보는 일도 그만뒀겠지. 당신을 함부로 사랑하게 된 후로, 내 삶은 단 한 순간도 의지대로 흘러간 적이 없어. 단 한 순간도!”

“그냥 죽였어야죠. 왜 살려서 이 꼴을 만듭니까? 왜 나를 살려서, 왜 내 눈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서, 왜 그렇게…… 왜…….”

왜 그렇게나 아름다워서. 나를 이렇게나 비참하게 만들어.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에 대한 원망도, 집착도, 증오도, 애욕도, 갈망도, 두려움도, 아픔도, 열락도, 모두 그 한 단어에 집어넣었다. 이게 과연 그 단어 하나로 표현되는 마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4. l’amour

“사랑해요, 정말로, 죽을 것처럼……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믿어 주면 안 될까요. 나…… 당신에게 사랑해 달라고 말한 적은 없잖아요. 그냥 믿어 주기라도 좀 해 봐…….”

4. l’amour

아 진짜… 너무 처절하고 아름답다
이런 게… 사랑?🥹🥹👍🏻👍🏻

어제 진격하는 와중에, 하얀 눈송이를 인 채 피어 있는 붉은 장미를 발견했다.

꺾고 나면, 라플란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미가 되어 버릴 텐데. 라플란드까지 가져가기 위해서는 꽃잎을 말려야만 할 텐데. 말린 꽃잎 따위― 겨울에 피어났는지, 한때 눈을 맞았는지, 사지에서 꺾었는지, 그녀는 어차피 모를 텐데.

왜 그 독방은 아직도 나의 영혼을 구속하고, 왜 그날 울던 당신의 얼굴은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을까. 당신이 뭐기에 삶보다 간절하고 죽음보다 두려울까.

4. l’amour

사랑하는 여자가 나가 뒤지래서 참전한 전쟁터에서 발견한 장미꽃을 전해주기 위해 제대를 결심하는 남자라니…

비센테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며 고개를 젖혔다. 천장에는 거미줄이 군데군데 쳐져 있었다.

“그녀가…… 내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텅 빈 목소리가 목울대를 긁으며 빠져나왔다.

“한 적이 있기는 한가?”

세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늘 자각하고 있으면서도, 번번이 희망은 싹을 틔웠다.

5. l’amour

당신을 죽이면 이 어둠 속에 나 홀로 남게 될까.
그렇다면 나와 함께 나락에 있어.
나를 이 이곳으로 끌어들인 것도 당신이잖아.
그러니 당신은 책임을 져야 해.
영원히.

5. l’amour

그러나 세실은 그의 손을 내쳤다.
그는 그녀에게 닿아 보지도, 그녀를 만져 보지도, 그녀의 몸을 안아 보지도 못했다.

5. l’amour

비센테는 저도 모르게 동쪽으로 몇 걸음 내디뎠다가, 우뚝 멈추어 섰다. 그는 땀에 젖은 제 옷을 내려다보았다. 그냥 가도 싫어하는데 이렇게 땀에 젖어서 가면 얼마나 싫어할까.
와중에도 잘 보이겠다는 제가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5. l’amour

“한때는, 당신이 내 것이 된다면 아무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그냥 함께 죽어 버리고 싶다는 미친 생각까지 들었죠. 그러면 영원히 내 것인 채로 남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나는, 그런 걸 원하지 않아요.”
“…….”
“나는 그저 당신이……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5. l’amour

“너는 나중에 오렴.”

비센테의 얼굴에서 미소가 걷혀 나갔다. 그는 삐걱삐걱 고개를 틀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5. l’amour

“한 번만.”
“…….”
“한 번만 입 맞춰도…… 될까요.”

창백할 만큼 흰 얼굴과 깊은 호수처럼 검은 눈동자, 기쁨을 모르는 차가운 눈매, 반듯한 코, 단 한 번도 미소를 머금은 적이 없는 듯한 입술…….
세실은 기억보다 더 나이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과 그대로이기도 했다. 그녀는 여전히 눈의 나라 공주님 같았고, 여전히 고장 난 관절 인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 여전히― 그 언젠가 어린 소년이 먼발치에서 애태우며 바라보던, 아름답고 성숙한 여자였다.
비센테의 눈가가 희미하게 진동했다. 상처 입고 갈구하며 살아온 평생의 대가가 이것이라면, 과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삶이라도 기꺼이 몇 번이고 살아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5. l’amour

내가 당신을 함부로 사랑해.
이 마음이 형벌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 감정이 나를, 그리고 당신을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몰라 겁이 날 정도로.

그는 함부로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두다가, 함부로 고개를 숙였다. 떠오른 태양이 지표면 곳곳을 잠식하듯 물들였다. 눈이 멀어 버릴 듯 부셔 왔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도 함부로 눈을 감았다.
입술에 따뜻하고 황홀한 온기가 닿았다.

세실의 매가 더 이상 돌아오지 않게 된 것은 그즈음의 일이었다.

5. l’amour

누군가 위험하다고 외치며 비센테의 팔을 붙들었다. 비센테는 그녀를 놓지 않았다. 또 누군가 비센테의 허리를 붙들고 뒤로 끌어냈다. 비센테는 그녀를 놓지 않았다. 놓지 않았다. 놓지 않으려고 했다.
세실이 그를 쳐 내기 전까지는.

세실은 길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그에게,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옅게 웃는 그녀의 입매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 그 까만 페이지 위로, 세실의 미소는 잔상이 되어 눈앞을 메웠다. 눈이 멀 것처럼 아름다웠다.
자신이 그렇게나 보고 싶어 했던 그녀의 웃는 얼굴은, 기어코 아름다웠다. 까마득한 추락 속에서 비센테는 이를 악물었다. 안간힘으로 세우고 있던 고개가 툭 떨어졌다.

‘이 게임에서 거짓을 말한다면, 공은 가장 간절한 순간에 진심을 배반당하게 되실 거예요.’

5. l’amour

얼마 전 책에서 사랑l’amour과 죽음la mort의 외국 철자를 보았다. 마치 경쟁하기 위해 태어난 단어 같지 않니. 나의 l’amour는 la mort를 이기지 못해.
너는 어떠한지 묻고 싶다.
그러나 대답은 필요치 않아.

5-5. la mort

사랑이 죽음을 이기지 못해서 비센테에게 마음을 갖게 되었음에도 복수와 죽음을 택한 세실과
사랑이 죽음을 이겨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라면 당장 죽을 수도 있는 비센테

두 사람에게 사랑과 죽음이 각각 어떠한 무게를 갖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문장이었음

“당신을 사랑하느라 내 인생을 전부 썼어.”
“…….”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6. l’amour

비센테는 다소곳하게 모아진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젖은 얼굴을 묻었다. 그건 남녀의 성애와는 조금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는 온기와 냄새를 갈구하는 어리고 외로운 짐승처럼. 제 뺨을 비비고, 입술을 붙이고, 눈가를 눌러 왔다.
세실은 그 애처로운 머리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비센테는 세상에 기댈 곳이 거기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품을 파고들었다.

6. l’amour

이 부분이야말로 세실 또한 비센테를 사랑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음
물론 세실이 복수를 바라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지쳐버린 것도 맞지만…
비센테가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버리길 원하지 않는 것이 세실의 사랑임을….

젖은 눈꺼풀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는 기이하게도 선연했다. 비센테는 이전보다 똑바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머니.
그건 누구에게나 있었던 어린 날의 잔혹성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저는 그때와 많은 것이 달라졌지요.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오래된 것들이 때때로 튀어나오곤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냥, 그런 겁니다.
이제야 그녀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시체에 익숙해요.

6. l’amour

“살아서는 가질 수 없는 여자였지. 하지만 이젠 상관없어. 사랑은 죽음을 이겨.”

그러고선 고개를 돌리며 환하게 웃었다.

“내 사랑은 그래.”

6. l’amour

그 고용인은 주인님이 봉투에서 장미 꽃다발을 꺼내 들고 방에 들어서는 것을 목격했다. 그 모습이 마치 연인에게 마음을 고백하러 가는 청년 같았다고.

하얀 가운인 줄 알았던 그것은, 붉은 장미꽃에 둘러싸인 백골이었다.
거칠어진 숨이 손바닥 안을 메웠다. 로랑 저택의 꼭대기 층에서 났다는 역한 냄새는 시취였다. 약? 약을 했다고? 뭐가 됐든 멀쩡한 정신으로 부패가 진행되는 시체가 있는 방을 들락거릴 리가 없었다. 그것도 꽃다발을 들고.
‘마치 연인에게 마음을 고백하러 가는 청년처럼…….’

7. l’amour et la mort

결국 비센테는 죽은 세실을 가졌고

미쳤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당신을 만난 이후로 내가 미치지 않았던 날이 있기나 할까 의문스럽습니다. 다 당신 때문이지요. 다 당신 때문입니다. 내 모든 것이 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입니다.

Dear C.L.

각 챕터 사이사이에 끼워져 있던 세실의 편지와, 이 파트에서 비센테가 세실에게 보내는 연서에 적어두었던 질문의 순서를 맞춰 보면
세실이 비센테의 의문에 모든 답을 달아줬음을 깨닫게 된다

순서를 따지자면 비센테의 연서가 먼저, 세실의 답장이 나중이지만
스토리 상에서는 세실의 답장이 먼저, 비센테의 연서가 나중에 공개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여운이 남는 느낌….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벌벌 떨기에 자신을 무서워하는 줄로 알았더니― 다른 감정이었던 모양이지.
본디 냉한 성정의 그녀이지만 어린 소년의 풋사랑은 그저 귀엽게 느껴졌다. 세실은 태연히 걸음을 옮겼다. 소년은 거리를 좁히지도 넓히지도 못한 채 계속해서 그녀를 쫓아왔다.

‘……믿는다.’

속삭이듯 대답했다. 비센테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어 세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리는 순간.
펑.
축제의 마지막 날 불꽃이 터졌다.

‘늘, 믿었어.’

epilogue

최고의 망한 사랑 이야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세실도 비센테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실에겐 사랑보다 복수가 더 중요했기에 비센테를 밀어내야만 했고
세실이 비센테에게 했던 모진 말들에 진심이 아예 없지는 않았겠으나…
‘죽은 남편과 아들을 위해 해야만 하는 말’과 ‘비센테의 인생을 위해 해야만 하는 말’, 두 가지의 의미가 모두 들어있었을 것이라 생각함

아무튼 비센테는 평생토록 세실의 유골을 끌어안고 살며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사랑이 아닐지….
비센테의 말처럼 세실은 ‘살아서는 가질 수 없는 여자’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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