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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박찬욱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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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3/02/06
장르 멜로/로맨스, 드라마, 서스펜스
국가 대한민국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38분
출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등

줄거리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



당연히 이번에 처음 본 게 아니고 극장에서만 4번, 집에서만 2번 봤다
그러니까 이번이 6번째로 보는 거다
한 번만 더 보면 뮤지컬 〈레베카〉 본 횟수랑 같아짐

240525에 친구들이랑 박찬욱 무비올나잇 하면서 한 번 더 봐서 이제 7번 본 사람 됐는데…
그 사이에 내가 〈레베카〉를 총 21번 본 사람이 되어서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게 됨

스포일러

마침내

패턴을 좀 알고 싶은데요?

이전의 대사와 “패턴을 좀 알고 싶은데요?” 사이의 침묵
해준의 숨소리를 들으며 다음 대사가 언제 나올지 기다리는 맛이 있다

해준과 서래의 숨

서래를 감시하다가 결국 (심리적으로) 서래와 같은 공간에서 눈뜬 해준

서래의 숨과 자신의 숨을 맞추는 장면
물론 실제로 같은 거리에 있던 게 아니라 해준의 망상 속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이 할머니의 방 정말 멋있다
벽지도 멋있고 물고기 키우는 것도 멋있고 앵무새 키우는 것도 멋있고
실제 가정집에서 누가 저런 벽지를 쓰겠냐만은 박찬욱 감독의 저런 과감한 벽지가 너무 좋은 나머지 내 방 벽지도 저런 걸로 바꾸고 싶어짐

동류, 해준과 서래

영화 내내 잘 살고는 있지만 잘 맞지는 않는 사이라는 걸 보여주는 해준과 정안
해준은 정안의 말처럼 ‘살인과 폭력이 같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고
정안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근대 나는 해준이랑 비슷한 쪽인 것 같다 정안처럼 모든 상황에서 퍼센트를 말하며 사는 사람과는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음)

그리고 그 둘과는 반대로 말이 없어도 통하는 사이인 해준과 서래
이 장면 외에도 두 사람이 잘 맞는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은 많지만 (기도수의 시체를 말이 아니라 사진으로 확인하는 서래라든가)
가장 좋아하고 또 직관적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바로 이 장면, 초밥을 먹은 후 함께 정리하는 두 사람

영화관에 초밥 들고 와서 이 장면에서 함께 초밥을 먹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도 내가 초밥을 좋아했다면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 같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이 장면까지가 ‘말이 없어도 통하는 동류’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씬이라고 생각했다

더보기

일단 ‘동류’라고 표현하기는 했는데… 사실 이 둘은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하긴 하다만 동류까지는 아닌 것 같다
일단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특히 해준이 서래에게 흥미를 느끼게 된 계기가 ‘둘 사이의 공통점’인 건 확실하다만
해준은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서래는 살기 위해,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다
서래에게는 딱히 자부심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해준은 서래처럼 무엇이든 하지 못 한다

깊은 숨

이 장면… 사실 영화관에서 처음 봤을 땐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영화 다 보고 나와서 다른 사람의 리뷰를 살펴 보다가 해준이 서래의 향수 향을 맡고 있었음을 알게 됨

해준의 관음

서래의 맞은편 집 옥상에서 서래를 관찰하는 해준
그저 수사의 일환일 뿐이지만 (근데 해준한테 사심도 섞여 있었겠지) 이걸 서스펜스 영화가 아니라 로맨스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면 이거보다 로맨틱하기도 힘들다 진짜로
이 장면 볼 때마다 도파민 과다분비 됨

관심있는 여자를 의심하며 몰래 지켜보는 행위….
그리고 그때그때의 감상을 음성으로 녹음하는 행위
로맨틱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내 기준) 〈헤어질 결심〉 속 최고의 명대사 top 3 안에 드는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
그걸 듣는 해준이 약하게 미소짓고 있는 것만 봐도 이 인간 벌써 서래에게 빠져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해준은 역시 미스터리에서 이끌림을 찾는 남자인 것 같다

막상 서래가 말할 때는 그게 어떤 말일지 몰랐던 해준은 서래가 아마 남편의 죽음과 관련된 말을 했을 거라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걸 번역을 했을 때 들렸던 게 해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인 걸 알았고, 게다가 그때 해준은 이미 서래에게 흥미를 강하게 느끼고 있던 상태였으므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던 서래, 게다가 ‘심장’이라는 단어에서 해준은 이 순간 서래에게 거의 다 넘어갔을 거다

오히려 서래는 ‘마음’이라고 했지만, 해준이 그걸 ‘심장’이라고 받아들인 것이 해준이 서래에게 더 강한 이끌림을 느끼게 만들었을 거라고

재떨이를 받쳐주는 것만큼이나 로맨틱한 장면은 없다

멜로 영화에서 담배란 대체 뭘까?
담배가 개입되는 순간 영화는 뻐* 홀리 로맨틱이 된다

‘재떨이를 받쳐줬다’ 이 행동 하나만으로 해준이 서래에게 푹 빠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어 여기서 이미 장해준은 송서래에게 완전히 빠졌다고

우는구나, 마침내.

또 한 번 등장한 마침내
해준은 서래가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서래는 웃고 있었다는 것

나는 이 장면에서 서래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해준이 서래에게 깊이 빠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건 ‘심장’이라는 단어 때문이겠지만
내가 서래에게 빠진 이유는 바로 이 웃는 장면 때문이다
‘왜 서래는 웃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이 여자가 미친 듯이 사랑스럽고 비밀스러워 보인다
나는 이 비밀스러운 여자가 좋아

이건 좋았던 연출 중 하나
차 안의 실제 해준과, 해준의 상상 속 서래 옆 해준의 동기화

박찬욱 감독님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영화관에서 처음 볼 때 진짜 속으로 ‘헉!’했던 장면
이거 15금 아니야?! 이거 이래도 되는 거야?! 속으로 이랬는데
걍 내가 속은 거였음

서래는 본질적으로 해준보다 산오에 가깝다

이거 봐 단번에 산오의 심리를 꿰뚫잖아 서래와 산오는 동족이니까
그런데 해준은 서래가 자신과 동족이라고 믿는다
아니야 그거 틀렸어

최고의 명대사

해준의 고해성사

해준은 이미 서래에게 푹 빠져있다
정안이 아니라 서래 얘기를 하는 것만 봐도….

“사실 나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거든”에서 이미 해준은 서래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정의내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단순히 산오를 설득하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니라 일종의 고해성사인 셈

미안하지만 나는 남자가 좋아하는 이유 구구절절 말하는 거 가오 떨어진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이런 말 하지 말고 비언어적으로 사랑을 보여달란 말이야
아니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쪽이 더 와닿는다고

이런 직접적인 사랑고백보다 ‘붕괴’ 쪽이 훨씬 더 마음이 잘 느껴지고 내 마음도 움직이고
은유적인, 혹은 비언어적인 고백이야말로 진짜 사랑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멜로 영화에서 담배 못 나오게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힘드니까
내가 도파민 과다분비 때문에 힘드니까
늘 말하지만 꼭 벗어야 에로인 게 아니다 무드가 야하면 에로다

위에서 나왔던 같은 종족이니 뭐니 하는 사랑고백보다
이렇게 담배 잡아주는 쪽이 훨씬 더 마음을 움직인다
최고의 사랑고백이라고 볼 수 있음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서래

아까 위에서 서래를 ‘살기 위해,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기도수를 죽이기 위해 고소공포증이 있으면서도 산을 오른 서래는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특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보여준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특성은 해준을 꼬신 것
자신이 기도수를 죽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해준이 자신에게 푹 빠지게 한 것

무너지고 깨어짐

그래 아까 내가 위에서 말했잖아
같은 종족 어쩌구 이런 사랑 고백은 가오 떨어져요 별로예요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이거야말로 인류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사랑고백이다
스스로가 무너지고 깨어졌다고 말함으로써 사랑을 보이고 있잖냐
내가 당신을 이만큼이나 사랑했노라고

걔 자살 충동 있어요

해준이 떠나간 뒤, 앉아서 눈물을 흘리던 서래는 펜타닐을 바라본다
그리고 펜타닐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서래 컷

이러한 장면에서 이 대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걔, 자살 충동 있어요.

대사는 지구가 산오에 대해 하는 말이지만, 화면은 서래를 비춘다
서래에게도 산오와 같은 자살 충동이 있다는 의미….
당시에는 서래와 산오가 비슷한 부류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로 쓰였을지 모르겠지만,
이 장면에 다다르고 나서야 서래가 자살 충동을 느껴 펜타닐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애플워치를 사게 된 이유

애플에서 박찬욱한테 뭐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나도 한 평생을 애플워치에 관심도 없다가 〈헤어진 결심〉 보고 나서 애플워치 질렀다
아주 잘 쓰고 있음

해준과 서래가 애플워치에 사랑을 말하는 장면 때문에
나는 녹음 기능 쓰지도 않는데 배경화면에서 바로 녹음할 수 있게 설정도 해뒀다

이거는 그냥 내 예상이지만
해준은 이포로 전근 온 뒤, 애플워치 대신 시계를 차기 시작했을 거고 이미 그것에 익숙해진 상태였을 거다
그래서 시계에 녹음을 하려는 행동은 아마 이포로 전근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시계에 익숙해지지 못했을 때 몇 번 하고 금세 적응했을 것 같은데….

서래를 만난 뒤에 해준은 마치 애플워치를 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느꼈고
때문에 애플워치를 두드리는 버릇은 이미 버렸는데도 순간적으로 그게 되살아난 게 아니었을까, 예상함

나는 이미 서래에게 푹 빠졌으므로

이 장면들마저도 그저 사랑스러울 뿐이다

연수도 서래를 ‘불쌍한 사람’이라고 표현했고… 남이 보기엔 정말 서래는 ‘남편을 두 번이나 잃은 불쌍한 여자’일 뿐
서래에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 해준뿐이다

서래의 사랑스러움

서래는 정말 사랑스럽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을 꼽자면 바로 여기
피를 무서워하는 해준을 위해 수영장을 청소하는 서래

서래의 ‘살기 위해,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속성 중에서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 한 첫 번째가 임호신을 죽인 것이고,
두 번째가 바로 이 장면이다

죽어도 괜찮을 결심

서래가 뒤에서 다가오는데 눈을 얌전히 감고 있던 것만 봐도
이 남자는 서래가 자신을 뒤에서 밀어도 얌전히 밀려서 죽어줄 생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이 영화가 19금이 아니라는 점이 너무 좋다….
해준과 서래의 스킨십이 ‘키스’가 마지막이라는 점이 좋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좋은 거야

정안과 서래

해준과 10년이 넘게 지냈는데도 해준의 물건이 어느 주머니에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던 정안
반면에 거의 1년이 지난 후 만나도 해준의 주머니 위치를 기억하고 있는 서래

〈화양연화〉

누가 봐도 오마주 했죠

서래의 사랑

서래는 살기 위해 해준의 자부심을 꺾었고 해준은 붕괴되었지만
해준의 ‘붕괴’로 인해 서래는 해준을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서래는 사랑을 위해 해준에게 자부심을 되돌려주고자 한다

그래놓고선 바란다는 게 이런 거다
사실 이거야 말로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긴 함
상대방이 계속 내 생각만 하면서 살아가는 것만큼 사랑인 게 어딨냐고

서래는 해준을 사랑하기 때문에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게 해주고 싶었지만
또 사랑했기 때문에 내 생각을 해주길 바랬겠지

해준이 ‘붕괴되었다’고 했을 때, 서래는 이를 사랑고백으로 받아들였지만 해준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준이 맛알못인 거임
나도 살면서 해준의 붕괴 발언보다 열렬한 사랑고백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당신 목소리요.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아무튼 내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서래의 대사는 이거다

이 대사를 기점으로 관객들은 비로소 송서래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얼굴

탕웨이의 연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
얼굴에서 ‘사랑에 푹 빠진 상태’라는 게 느껴진다
누가 봐도 사랑을 하고 있는 여자잖아
아 사랑스러워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 서래가 해준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행동은 바로 죽음
해준에게 자부심을 되돌려주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해준의 안에서 영원히 살아가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

추한 해준과 아름다운 장면

서래가 사라지고 해준은 급격하게 추해진다
머리도 다 헝클어지고 얼굴도 폭삭 늙은 것 같고

무엇보다 ‘자부심 있는 경찰’로 살아가고자 했던 해준은 다른 경찰에게 윽박을 지른다
그런데 그 소리치는 모습이 너무 볼품없고 추하다
진짜 완전 추함

그리고 이 장면에서 해준은 한 번 더 붕괴한다

자신의 붕괴를 직감한 듯한 웃음

그것도 ‘완전히’

저 뛰어다니는 모습 좀 봐
완전 추해
자부심이고 품위고 다 잃었다 이제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해준이 추하기 때문에 이 장면이 진짜 너무 아름다운 듯
결국 모든 걸 잃고 뛰어다니는 추한 남자… 오, 아름다워.
해준이 추하니까 이 장면이 아름다운 거야

아무튼 이 이후로 서래의 시신은 절대 못 찾았으면 좋겠다
해준의 안에서만 영원히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정말 해준에게 일말의 희망도 주고 싶지 않다 영영 서래가 ‘깊은 바다’로 간 것만 알고, 정확히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며 평생 서래를 생각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이 이후로 해준은 다시는 품위와 자부심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겉으로는 회복한 것처럼 연기할 수 있어도… 본인은 알겠지 절대 붕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음을


총평: 정제된 영화, 〈헤어질 결심〉

지금까지 본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에서 〈헤어질 결심〉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정제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박쥐〉는 욕망을 너무 노골적으로 표현해서 내 취향이 아니다
〈아가씨〉는 너무 좋지만… 19금 영화라는 게 오히려 감점 요인

19금 씬이 없는 멜로 영화가 좋다
〈헤어질 결심〉처럼 주인공들 사이의 19금 묘사가 없기에 더 감정적 교류가 느껴지는 영화도 좋지만,
19금 씬에서 내가 기대하는 건 ‘씬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아니라 ‘그 행위로 인해 변화된 관계’이므로 영화에 19금 씬이 있는 것보다 ‘이 이후에 두 사람은 잤다’라고 은유적으로만 알려주고 넘어가는 편을 더 좋아한다
근데 〈아가씨〉는… 나한테 씬을 보여줬잖아
퀴어 영화 특성 상 씬이 있는 편이 좋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씬이 없는 〈헤어질 결심〉이 좋다

박찬욱 감독은 ‘아름다우면서 추하고 슬프면서 웃기고 성스러우면서 천박한 것이 좋다’고 했지만,
나는 영화가 그냥 아름답고 성스럽기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슬펐으면 좋겠다 (슬픈 거 중요함)
그런 의미에서 〈헤어질 결심〉 속 추함과 천박함은 내가 딱 수용할 수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가장 좋다

서래 테마곡

음악은 장조인데 비극적이거나 단조인데 활기찬 편이 좋다
보통 장조는 희망차고 단조는 슬프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반대가 되었을 때 나오는 아이러니야말로 아름답지만 슬프고 성스럽지만 슬프고 웃기지만 슬프고 하여튼 양가적인 감정을 다 전달해주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엔딩곡이었던 ‘서래’는 정말 최고의 곡이다
이 곡은 전체적으로 슬프고 차분한 느낌이지만 1분 13초부터는 묘하게 들뜨는데,
그 부분이 나오면서 해준이 바닷가를 팔짝팔짝 뛰어다닌다
그 모습이 진짜 정말로 추하다
그래서 그 장면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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