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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정수읠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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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읠
출판 매드햇
분류 판타지 웹소설 > 퓨전 판타지

줄거리

망해가는 출판사의 편집자 김정진은 소설 속으로 가
갑부집의 무능한 막내아들에게 빙의한다.
직장인의 꿈, 돈많은 백수가 되나 했더니...
‘왜이렇게 능력치를 높게 줬어! 백수도 못 하게!’


100화즈음부터 진가가 드러나는 소설

솔직히 앞부분 라노벨 같다는 평에 동의한다
그래서 나도 앞부분 읽다가 한 번 튕겼는데… 참고 100화 넘기고 난 뒤에는 쭉쭉 읽혀서 바로 300화 정도까지 읽은 듯

연재 중일 때 꾸준히 읽어서 완결까지 다 읽었는데
내 고질병인 ‘연재작 읽다보면 내용 까먹어서 단행본으로 읽어야 함’ 병 때문에 사실 뒷부분 내용이 잘 기억이 안 난다

매일 소량의 정보가 들어오면 자꾸 까먹어서 단행본으로 3일 동안 후루룩 읽어야 기억이 남….
아무튼 단행본이 드디어!! 나왔으니 조만간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한다

나는 웹소설은 특히나 문체를 많이 가리는 편인데
문송은 문체가 정말 취향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읽을 수 있었음

  • 비선호 문체: 경박하고 가벼운 주인공 말투
  • 선호 문체: 무거운 문체, 어두운 분위기, 다소 우울감에 젖어 있어도 ok

아무튼 진짜 좋았고 수작임

스포일러

3권

‘이 애의 마법은… 지나치게 아름답지 않은가.’

68화

6권

본질적으로 클레이오의 일은 인용문을 낭독하는 것이다.
그 행위를 이 세계는 ‘마법’이라 명명했다.
과거에는 ‘정진’의 유일한 도피처였던 매체가 지금은 마법의 매개체가 된다.

124화

“어찌 그대는 신을 살해했는가?”
“인간은 신을 소유할 수 없기에. 신의 사랑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기에.”
“사랑의 신께서 내리던 은총이 부족하였는가?”
“과분하였으나, 유일하지가 않았소.”

137화

7권

“그게 바로 지금의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니까요.”

152화

이 순간 아서는 신의 대리인이 자신과 함께함을 믿지 않을 수 없다.

163화

8권

그럼에도, 어떤 텍스트들은 오독된 채로도 자체의 맥락을 형성하고, 힘을 가진다.

184화

9권

“역사를 보았답니다.”

189화

10권

책을 보거나 베껴 그려서는 효용이 없고, 그 자신이 온전히 외워 그린 것만 소용이 있어서 마법식을 못 외는 아서는 도와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시엘이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서클을 펼치지 못하는 검사가 사용하는 마법식의 효력은 극히 미약해 클레이오의 열은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늘게 눈을 뜬 클레이오는 몇 번이나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여려서 이시엘은 눈 아래가 조금 뜨끈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그녀에겐 낯선 감각이었다.

208화

“아세르 너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 속 악마같이 구는 면이 있다.”

209화

이 페이지는 마지막 귀환가능지점이었다.
그러나 클레이오는 이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결코.

222화

이것은 참으로 긴 이야기. 신이 쓰는 인간의 서사시.

222화

그 후에 도래한 아홉 번째 세상에서, 선택은 클레이오에게 위임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인공은 내내 올바르리라.
희생을 당연시하지 않으리라.
올곧음은 유지되리라.
네가 아니라면 내가, 어두운 곳의 토대를 세우면 된다.

222화

세상에 흔히 존재하기 어려운 미덕을 보존하는 임무를 맡은 것.
그것은 박물관의 학예사나 도서관의 사서와 같은 소명이 아닌가?

223화

11권

마법사는 좀 행복해졌다.
그들의 마법사가 행복해서 검사들 역시 행복했다.

244화

마법사 클레이오 아세르는 친구들이 획득해야 할 앎과 이해에 올바른 때와 장소가 있는 것마냥 굴었다.
역사의 집행자이자 주재자처럼.

‘하지만 부분인들 어때.’

저토록 열렬하게 우리를 살리고 싶어 하는데.

244화

『영웅에게는 의무가 남았다. 이렇듯 그를 살도록 하라.』

247화

12권~

역사의 이름을 가진 이가 말했다.

“아서. 네 뜻은 이루어질 거야.”

네가 신 안에서 길을 찾는 한 언제까지라도.

284화

이 밤 모든 별들이 너를 위해 정렬되었다.
아서는 왕이 될 것이다.

292화

900번 서가.
다섯 번째 거울 조각은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곳에서 클레이오는 제목도 내용도 서지사항도 없는 한 권의 빈 책을, 오래 전 조별 수업 때 찾았던 참고도서의 곁에서 발견한다.

312화

이 기억된 세계의 이름이 ‘재와 강의 도시’인 이유를 클레이오는 이해하게 된다.
홍수와 폭풍, 풍랑과 붕괴에도 스러지지 않고 버텨냈던 도시를 결정적으로 거꾸러트린 것은 빛과 열이었다.
이제 더 이상 서울은 없을 것이다.

314화

“내가 에테르 감응력의 한계를 넘어 쓴 마법은 나의 질량을 앗아가고, 그건 레지나 당신에게 일어났던 일과 같다는 걸 앞으로 내내 모르리라 여겼어?”

에테르 부족으로 인한 각혈 뒤엔 체중이 미세하게 줄어들었고, 그런 식으로 손상된 신체는 아주 느리게 복원됐다.
마치 자라지 않는 레지나의 머리카락처럼.

315화

‘이것이 세상의 끝이다. 쾅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흐느끼듯 스러지는 것이다.1)’

316화
1) 「The Hollow Men」, T. S. Eliot.

부분적 진실은 온전한 진실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클레이오는 침묵했다.
해명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이렇게 멀리 떠나 있다.

321화

그래서 클레이오는, 참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이곳에서 오래 살 것이다.
그러므로 클레이오는 읽기를 이어 나갔다.
여기, 서사시의 세계에서 쓰인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읽었다.

322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순간.
남은 가능성은 단 두 가지이다.
세상의 주인공과 함께 살아남거나, 혹은 아홉 세계 전체의 기억과 함께 소멸하는 것.

331화

내게 있던 것? 오직 사랑이지.

333화

‘저는 그만하고 싶습니다.’

334화

이곳 동남 전선에서 ‘마법사’라는 건 하나의 직업군을 뜻하는 일반 명사가 아니라, 한 사람을 뜻하는 고유 명사였다.

353화

“최후미 3열, 열 다시 맞춰. 대머리 되기 싫으면 자리 똑바로 잡아. 잘해라. 1분 준다.”

353화

ㅋㅋ 아 이 부분 너무 좋음

그즈음 클레이오는 전쟁의 목적에 관해서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355화

클레이오의 비공식적인 이칭은, 그렇게 불로부터 탄생했다. 제후천사의 불을 다루는 이는, 역시나 신의 사자일 수밖에 없으니.

355화

클레이오는 살인이 두렵다. 그러나 백여 명 기사의 심장을 멈추는 편이, 세상이 멸절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다수와 소수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판단은 클레이오, 저의 손에서 이루어지면 족했다.
자신의 모든 재능과 자질을 바쳐 아서의 뜻을 이뤄 주겠다는 오래된 신의의 말은 여전히 유효했다.

356화

이전에도 때로는 먼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치 계시를 듣는 듯 굴던 친구는 점점 더 사람으로서의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산 사람의 기척, 생명의 정기가 빠져나가고 걱정스러울 정도로 바싹 말라붙었다.
그 소진은 육체와 정신 모두에서 일어났다. 어딘가 비인간적인 기색이 도는 클레이오를, 일반 병사들이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할지 몰랐다.

358화

“레이, 너 혼자서 모든 걸 다 감당하려 들지 마!”

368화

알비온의 마법사는 헤스터의 최후까지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이 천사의 행동은 아닐지라도.

자신에게는 심판의 자격이 없다. 그러나 그는 흑적의 마법사가 심판당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는 있었다.
감히 그 어떤 인간도 다시는 신의 원칙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세계의 순리를 어기지 못하도록.

370화

오히려 그들이 놀란 것은 클레이오가 쓰는 마법의 전시적인 형식과 잔인함이었다. 은총의 마법사가 은총이 배제된 마법을 쓰고 있었다.

370화

그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단어는 하나였다. 징벌.

371화

이 밤이 지난 후에도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들같이.
우선 스스로 그렇게 믿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376화

이곳은 극장이 아니라 법정이고, 자신은 권한을 가진 배심원이다. 역사의 세계에서, 전회(轉回)한 사도가 묘사한 심판의 장소는 재판정이었다.
그것만은 아홉 번째 세계에서도 다르지 않다. 신은 증거품을 내보이듯 그가 전후의 사정을 알도록 한다. 현재를 도출해낸 과거의 과정을.
그리하여 클레이오는 그 모든 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본다.

382화

독일어에서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이야기로서의 역사가 각각의 단어를 가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세계의 언어에는 그러한 분화가 없다.
이야기는 곧 역사이고, 신과 역사 사이에 자신이 있다.

382화

“이제는 확신한다. 죽어야 하는 이는 간절한 생의 간구 속에서도 죽고, 살아야 하는 자는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도 결코 눈을 감을 수 없지.”

383화

그것은 기록의 개찬을 거부하는 원고 때문인 동시에, 제가 쥔 펜의 무게를 새삼스레 자각한 교정자의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383화

갓 탄생한 메이지 마스터의 첫 마법으로 인해 알비온 동부에선 자연적으로 흐르던 에테르의 흐름이 모조리 요동치다가 정전이 되듯 끊겼다.
그 완전한 힘의 진공 속에서 한순간이지만 검사들의 검기가 가셨고, 마법사들의 서클이 꺼져버렸다.
한 사람이 세상의 에테르 흐름을 뒤흔들었다.

384화

이 마법 안에서 클레이오 개인은 무화(無化)된다. 남는 것은 신과 구원의 기적에 대한 찬양이다.

385화

클리오의 이름을 받은 클레이오는, 역사와 또 새로 쓰는 역사 속에서 정신과 신체 모두 마모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387화

강력하고 아름다운 진언으로 명성을 떨치던 마법사는, 결국에는 진언에조차 기대지 않고 온 세상의 에테르를 다스리게 되었다.
저런 것이 무슨 마법이란 말인가.
비록 재현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내적인 법칙과 규칙이 규명되어야 하는 것이 마법인데.

392화

당신은 그게 목인가 보죠, 뭐.

397화

솔직히 문송 읽으면서 제일 소름돋았던 대사가 이거였음

“그래, 난 학살자야. 그리고 너는 학살자를 부러워하지. 어느 쪽이 더 잘못된 거 같아?”

406화

그는 고독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시간을 돌이킬 권능 없이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하는 건, 도무지 견딜 수가 없는 일이었다.

407화

“내 심장을 꺼내 가려면 나를 이겨야 마땅한데, 네 주군이 살아서 못 이룰 목표를 위해 네가 먼저 헌신성을 보여 보겠나? [차폐].”

407화

마침내 여기에서 〈알비온 왕국의 왕자〉 1부가 종결지어질 것이다.
이후의 세계는, 클레이오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다.
그는 더 이상 예언의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인다.
열망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사관의 펜 끝에서 잉크가 마르는 역사의 공백기를 맞이하는 것.
그리하여 마법사는 기꺼이, 스스로의 안식을 위해, 또한 아서의 머리 위에 왕관을 씌우는 결말을 위해 펼쳐진 불확실성을 향해 뛰어든다.

412화

편집자 권한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클레이오의 위명은 결코 성흔 위에서만 구축된 것이 아니었다.

416화

잠이 들면 주변으로 백금빛 에테르가 누수처럼 흘러넘쳐 고였고, 대체로 진언이 필요 없으니 반쯤 무의식적으로 마법을 과용하곤 했다.

426화

하… 클레이오가 좋아

이 순간 그는, 도무지 경우에 맞지 않는 고양감을 느낀다.

어떤 책들은 세계를 개변한다.

다음 신은 없다.
남겨진 세상은 여기까지, 이게 다였다.

428화

동남 전쟁의 참상 속에선 인간성을 잃어가는 듯 감정 표현이 없었는데, 지금의 저 마법사는 또 이상하리만치 절박해 보였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 동부 전선의 참화보다 심각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저 마법사는 왜 저리 구는 것일까?

429화

그런데도 남겨진 자는, 역사적 순간이 자신을 지나쳐 갔음을 자각하는 지성의 소유자는, 통한의 감정을 느낀다.
그의 직관이 소리치고 있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고.

429화

“… 네 유정함은 널 미치게 할 터이니.”

431화

네 할 일을 하라는 다정한 독려가 어쩌면 이토록 무참하게 여겨질까.
자신의 친구는 친구이기 이전에 신의 대리인이며, 이것은 신이 그에게 부여한 사명이다.

431화

신과, 신의 대리인과,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자의 뜻이 하나로 합치될 때 기적이 일어난다.
본디 삼위일체란 진노하고 벌하는 창조의 신과 사랑으로 구원하는 신을 일관되게 설명하기 위하여 발명된 개념이 아닌가?
이 세계에는 아버지이신 신 따윈 없고, 지금 너는 분명히 그 성스러운 세 위격의 한 축이다.

『여신이여 노래하소서, 내 유일한 왕의 분노를.』

431화

아서는 자신이 이룩한 것이 승리라고 믿기가 어렵다.
이건 대결도, 싸움도 아니었다. 상대의 이끎에 말려든 행위다.
몰아붙였는데도 몰아붙여졌다는 낭패감, 길을 잃은 자의 불안이 아서의 파헤쳐진 등줄기를 저릿하게 했다.

432화

저것은 승리의 월계관이 아니었다. 차라리 가시나무의 면류관이었다.

432화

‘한시적 불멸성’은 이솔트가 이루었던 성취인 동시에 그녀의 첫 생애를 사람으로선 견딜 수 없는 통고로 충만하게 했던 속박이었다.
그 지독한, 끝이 없음의 굴레.
지난 원고에서 아서는 이 두려운 축복과 연관된 적이 없다.
그랬다면 세상은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 최종고에서 일어난 이 사태는 누구의 의지란 말인가?

432화

“그대는 세상을 쓴 책에 이리 술회했지. 이곳은 고통의 총량이 적은 세계라고.
그러나 진실로 내게도 그리 말할 수 있나?”

433화

“… 자아, 이제 완결을 내도록 하자. 모든 이야기는 끝이 있어야 한다. 장엄하고 아름다우나 끝나지 않는 원고보다는, 균형이 어긋난 채 어색하게 완결된 이야기가 내게는 더 가치가 있네.”

435화

그 밤에, 세상의 순전한 사랑이 죽은 밤에, ‘신살자’가 태어났다.

435화

그러나 그가 패배했기에 동정이 비집고 들 자리가 생긴 거라면, 너무나도 저열하지 않은가. 이것은 지독히도 기만적인 행위이다.

436화

아, 이것이 인간 종족의 어찌할 수 없는 특질이 아닌가.
이입은 섣부르고, 판단은 성급하다. 멋대로 연민하고,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또 동정한다.

440화

요즘 들어 금지가 풀린 담배를 꺼내고 마법으로 불을 붙여 첫 모금을 깊이 빨았다. 그리곤 여전히 말똥말똥한 눈으로 자길 보는 아서를 놀리듯 연기를 훅 뿜었다.

451화

왜 담배 피우는 주인공들은 이렇게 섹시한 걸까요?
실제로 길거리에서 간접흡연 당하면 그렇게 빡칠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놀랍지는 않았다.
지난 행복했던 전후의 시간은, 그 목적 없는 시절은 역시나 유예였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인정하게 된다.
자신은 이 세계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끝에서 끝까지 제 눈으로 보았던 세상을 진심으로 지키고, 보존하고 싶다는 것을.

452화

밤 속으로 달아나는 연인들처럼 그들은 문 앞에 섰다.

453화

“소설은 신이 없는 세계의 서사시1)이며, 우리는 종국에 우리가 창설한 세계를 떠나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 문장은 본래 ‘신으로부터 내버려진2)’이었단 걸 기억해.”

453화
1) Georg Lukács, 『Theory of the Novel』 참조
2) Georg Lukács, 『Theory of the Novel』 참조

대학 신입생이던 그때에는 그저 사랑에 빠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옳은 회고일지도 모른다.
한 세계를 생존케 하려는 그 엄청난 사랑이 정초된 날은, 적어도 클레이오에게는 그날이었다.

454화

방사능 누출 없이 일어나는 방사능 오염.
가스를 쥐어 짜낸 일이 없는데도 침하하는 지반.
대공장 없이 일어나는 중금속 먼지바람.
손쓸 수 없었던, 돌이킬 수 없이 괴사해가는 8세계의 징후들.

455화

이 대목은 정말 너무 처참해서 절망적이었구요

이 아홉 번째 세계에서 그는 지상의 권력을, 권위와 권능을, 부와 명성을, 사랑과 존경을 모두 가졌다.
그렇게 최상의 것을 가졌기 때문에 최상의 것으로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항상 그리되도록 전례를 남기면서.
편집의 끝은 원고의 마지막 장을 덮는 것이다.
원고를 책으로 만드는 작업은 순전히 판면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의 마지막 권한은 바로, 원고를 책으로 묶기 위해 있는 것이었다.

455화

계속해서 말을 고르고 또 고르게 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이 바탕에 있어서이다.
어쩌면 이 증언은, 친구들에게 ‘제대로’ 기억되고 싶다는 욕심의 발로일 터였다.
자신이 가고 나면. 그렇게 세월이 지나면 동료들도 친구들도 자신에 대해 잊을 것이다.
처음에는 매일 같이 언급하겠지만 점점 입에 담는 일이 드물어질 것이다. 함께 쌓아온 현재형의 동료애도 과거가 될 것이다.

457화

세상이 멸망 앞까지 당도한 순간 보았던 환시.
극장의 무대에 두루마리를 들고 서 있던 검은 머리 사내가, 바로 클레이오였다는 것을.

457화

과도한 빛에 휩싸인 그는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보였다.

458화

리오그난 왕가의 광증은 앎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458화

최초의 9레벨 기사는 수도를 모두 덮을 면적의 검격 범위와 대마법사에 지지 않을 에테르 유량을 소유하게 되었음에도, 시간에만은 무력했다.
그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

465화

주요한 도구가 된 모든 인간에게 비극을 안긴 신은, 마침내는 자신의 친구를, 기약되지 않을 세월 동안 홀로 세계를 지탱할 들보로 심으려 든다.
그저 한 사람을 세계의 토대에 세워 그 무게를 견디도록 하는 행태는, 사라진 고대의 인신 공양 풍습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459화

신은 옳은 것인가?
그녀의 뜻을 무조건적으로 따라야만 하는가?
고통을 줄이기 위한다는 명목 아래, 압도적인 소수가 저 모든 고통을 짊어져야만 하는가?
신의 뜻 밖에서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과도하고 잔혹하지 않은가?
우리는 신의 뜻에 의해서만 살아야 하는가?

459화

“나는 그저 알고 싶었던 거야, 레이.”

그리고 나는 네가 알기를 원치 않았던 거다.

459화

완전히 의식을 잃은 레지나 이스토리아는 몸의 절반이 므네모시네의 문과 결합돼, 아름답고 생생한 조각상처럼 되어버렸다.
희미하게 뛰는 맥이 아니고서는 감히 살아있는 생명체라 부르기 어려운 모습으로.
문을 휘감은 나무와 덩굴 사이에 여신은 경화된 눈을 가만히 내리뜨고 있었다.
아서는 그녀의 모습으로부터 다프네의 조각상을 떠올렸다.

460화

이 대목 형광펜이 22/04/28에 그어졌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비유

아서의 소망은 정확해진다. 그가 획득하려 들던 이름은 저자author이다.

476화

어떤 지속은 종말보다 비루할 것이기에.

477화

뭔놈의 형광펜을 이래 많이 쳤는지…
백업하다 죽을 뻔

더 자세한 리뷰는 단행본을 다시 읽게 되면 적어보도록 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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